일상

이 애. 제가 얼굴로 쓰는 애 얘기인데요.

이름은 희동이라고 하고, 보시다시피 시츄입니다.

...어디가 보시다시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

시츄답지 않게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털색깔이 은은하니 고운 절정의 미남자였습니다.

고양이도 좋아하지만 결정적으로 개파(?)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입니다.

식탐이 세고 표정이 풍부했습니다.

16년 이상을 같이 살았고, 그 뒤에 2년 이상을 우리 가족이 아닌 신부님과 보냈습니다.

헤어진 뒤 몇년 뒤에 신부님께 여쭤보자 가만히 계시다가

'종부성사를 해줬는데 고해할 게 하나도 없나 보더라'

라고 짧게 대답해주셨습니다.

※종부성사(終傅聖事) : 마지막 순간에 신부님이 행하는 성사.


그날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그리고 안녕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더 맑고 밝고 깨끗한 세상으로.


근데 제게는 남은 사진이 저것밖에 없어요.

왜 같이 더 많은 사진을 찍을 생각을 못 했던 걸까.

헤어질 때 '개는 다시는 못 기를 것 같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냥 막 그리워요.

좋았던 일도 나빴던 일도 똑같이 세피아색으로 덧칠되어서 그냥 다 추억일 뿐이고.


분명 저는 또 개를 기르게 되겠지요.

이번엔 하루에 백장씩이라도 사진을 찍어야지...

그리고 매일매일 냄새나는 발싸개를 제공해야지...

덧글

  • 남두비겁성 2013/09/03 20:24 # 답글

    근데 칠성사를 사람이 아닌 것에게 행해도 되는 겁니까, 신부님...? (...)
  • 애쉬 2013/09/04 13:12 #

    저로서도 깜놀했네요^^ ;;; 그냥 해보신 말씀이시겠죠?
  • 남두비겁성 2013/09/04 14:32 #

    뭐, 그냥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랑 비슷한 표현이셨겠죠.
    거기서 교리 따지고 있을만큼 고요한 마음도 아니었는지라...
  • gini0723 2013/09/03 20:27 # 답글

    뭐 고해할것이 없었다니 ... 미련없이 간거 아닐까요 ... 그리고 무척 귀엽네요!. 나중에 고양이나 강아지 키우고 싶은데 집에서는 어머니 알레르기 때문에 ㅜㅜ
  • 남두비겁성 2013/09/03 20:30 #

    그보다도 '개는 아무 죄가 없었다'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네요.
    물론 그 깊은 의미를 캐묻진 않았지만. 전 그 자리에선 그냥 입을 닫았으니.
  • SAngel 2013/09/03 21:24 # 답글

    지금은 어디선가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요.
  • 남두비겁성 2013/09/03 21:31 #

    엄청 빨리 하계로 내치는 거네요. 그럼. (...)
    한 100년 정도 휴가로 느긋하게 있다가 내려왔으면 좋겠어요.
  • 나나사키 아이 2013/09/03 21:29 # 답글

    생각해보면 개를 3번 키웠네요.

    3번 다 각각 다른 사유로 오래는 못키웠지만요...
  • 남두비겁성 2013/09/03 21:31 #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오직 개만이 온몸을 던져 당신을 환영해 준다'란 취지의 시를 썼죠.
    3번이라면 나중에도 또 개를 기르실지도 몰라요.
  • 언텟 2013/09/03 23:46 # 삭제 답글

    사실 그동안 정체가 많이 궁금하긴 했는데, 예전에 기르시던 아이였군요. 많이 그리우시겠어요.
    역시 사람이 살면서 남는건 사진밖에 없는것 같아요
    사진찍는걸 귀찮아하는 성격이라서 별로 이렇다할건 없지만.. 가끔씩 쭉 훑어보면 예전생각나서 흐뭇한 기분이 든달까. 
  • 남두비겁성 2013/09/04 00:15 #

    아무래도 전 사진이 찍히면 영혼이 달아난다는 어느 대륙 원주민의 혼이 씌였었나봐요. (...)
  • FlowDuet 2013/09/04 00:30 # 삭제 답글

    저는 반려동물을 기른 적이 없지만,
    어느 생명의 일생을 함께하고 지켜봤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떠난 친구도 마지막까지 행복했었기를.
  • 남두비겁성 2013/09/04 00:37 #

    대충 예상은 돼요.
    가만히 자고 일어났더니 배경이 바뀌어 있었겠지...
  • 크레이토스 2013/09/04 00:59 # 답글

    저도 말티즈를 키웁니다만 애가 벌써 12살인데 팔팔...했는데 최근에 종양걸려서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귀여운 녀석이것만...
  • 남두비겁성 2013/09/04 01:01 #

    12살 먹어도 행동은 애죠.
    물론 그쯤 나이먹으면 속엔 능구렁이가 한마리쯤 또아리를 틀고 있지만. (...)

    잘 해주세요.
  • KAZAMA 2013/09/05 01:28 # 답글

    멍멍이 귀엽네요 ㅎㅎ
  • 남두비겁성 2013/09/05 01:29 #

    그쵸그쵸? 완전 귀엽죠?
    집에 문을 열면 뛰어나오지 않으려나...하는 생각을 요즘도 하면서 문을 열어요.

    실제로 뛰어나와준다면 그건 얘가 돌아온 게 아니라 제가 거기로 갈 차례란 거겠죠.
  • Pandahero 2014/08/05 01:55 # 답글

    이 강아지가 희동이 였군여 .. 귀엽고 멋지게 생긴 강아지네여ㅎ
  • 남두비겁성 2014/08/05 09:07 #

    특히 코에 뽀뽀하려고 들면 가슴팍을 가만히 미는 게 귀엽죠!
    한정 S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22106
551
1825991